우리들의 이야기

주님 만찬 성목요일

작성자
박진용
작성일
2020-04-08 23:14
조회
846

주님 만찬 성목요일

 

내가 너희에게 한 것처럼 너희도 하라고, 내가 본을 보여준 것이다.”

로마와 이스라엘 지도자들에게 예수님의 십자가는 ‘본보기’였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가치관과 욕망을 거부한 예수님을 그냥 놔둘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에게 절대적이었던 율법,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누구도 거부할 수 없었던 동태복수법을 이용하여 되갚아주는 앙갚음을 선택하였습니다. 유대인들의 그 본보기는 세상에는 죄악이었고, 민초들에게는 고통이었으며, 진리를 살아야 했던 신앙인들에게는 지독한 슬픔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의 ‘본보기’였던 ‘십자가’ 예수님은 ‘죄악과 고통과 슬픔의 본보기’를 끊어버리고자 죽음을 받아들였습니다. 그 죽음이 승리가 되기 위하여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함께 하는 저녁 만찬을 스스로 준비하셨고, ‘세족례와 용서’로서 당대의 진리였던 ‘동태복수법’을 넘어 새로운 계명을 주셨습니다. 이 기억의 제사가 미사성제입니다. 미사성제는 죽음으로부터 승리하신 예수님을 기억하고 감사드리며 하느님께 올리는 제사입니다.

 

너희는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

우리 교회가 2천년이 넘도록 미사성제 안에서 중요하게 기억하는 신앙고백입니다.

시대의 죄악이었던 로마, 바리사이와 율법학자들을 끊어내고자 ‘죽음’까지 받아들였던 예수님의 삶은 제자들과 당대 백성들에게 ‘본보기’였습니다. 그 ‘본보기’는 ‘희망’이었고, 영원히 기억하고 싶은 ‘진리’였으며, ‘선’이었고, ‘아름다움’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렇게 세상의 죄악과 고통과 아픔을 치유해 주셨습니다. 그로서 세상은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그 치유의 행위 속에서 하느님을 보았고, 하느님을 고백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본보기’는 하느님과 화해이며, 피조물에 대한 치유였습니다. 이것이 성삼일을 기억하는 교회의 이유입니다. 오늘의 전례는 지독한 상처에 대한 치유와 화해를 ‘세족례와 용서’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 치유는 이제 누군가를 넘어 지독한 상처 속에서 넘어지고 있는 ‘지금의 나’에 대한 치유이며, 타인을 넘어 자신을 씻어야 하는 정화였고, 이웃을 넘어 자신에 대한 용서였습니다. 그런 면에서 지금 교회는 코로나-19를 통하여 상처받은 사람들을 치유하는 신앙고백이 이루어져야 할 것입니다.

 

너희는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

시대를 뒤엎은 혁명, 종이 주인의 발을 씻김이 아니라 주인이 종의 발을 씻겨주는 본보기, 자신을 팔아먹은 사람에 대한 분노가 아니라 용서, 예수님께서는 그 ‘본보기’로 십자가를 은총으로, 죽음을 부활로 바꾸어주셨습니다. 이것이 우리 교회의 신앙입니다.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이 코로나-19도 십자가입니다.

이 역시 우리 신앙이 짊어져야 하는 십자가임을 고백합니다. 십자가이기에 많은 사람이 마음의 문을 닫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을 열고 새롭게 어려운 국난을 이겨내기 위하여 세상에 자신을 봉헌하는 사람들도 많아지고 있습니다. 고통의 시간에 도망가거나 외면하지 않고 적극적인 행위로 대처하는 사람들, 이 땅의 평화를 위하여 가정에서, 그리고 성전을 찾아 기도하는 신앙인, 코로나의 현장에 달려가 사람들을 보살피는 방역의료진, 시스템을 통하여 안전을 지켜가는 중앙대책본부의 사람들, 그리고 격려와 홍보를 통하여 이겨나갈 수 있음에 힘을 보태는 사람들, 묵묵히 자신의 위치에서 힘겹게 버티어 나가는 사람들, 이 어려운 시기에 우리는 그들 속에서 ‘희망’을 보고 있습니다. 그들의 삶 속에 은총이 있는 까닭입니다.

 

주님만찬 저녁미사를 봉헌하는 오늘은 어려운 이 시기를 견디어 내고 계시는 우리 전민동공동체를 기억합니다. 모두에게 감사를 드리고, 조금 더 견디어내시기를 기도합니다. 특별히 이 자리에 함께 하신 ‘사목위원’들께도 감사를 드립니다. 신앙의 여정 속에서 힘겨울 수밖에 없는 ‘사목위원’이라는 직책, 직무를 받자마자 이어진 코로나-19의 아픔과 그에 따른 사목적 대응의 어려움, 어려워지는 경제현황은 본당의 재정현황까지도 힘겹게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어려운 이 시기에 우리 사목위원들은 우리 전민동공동체를 위하여 예수님의 ‘본보기’를 살고 있습니다. 고맙습니다.

 

그분께서는 이 세상에서 사랑하신 당신의 사람들을 끝까지 사랑하셨다.”

오늘 교회는 ‘세족례와 용서’를 통하여 ‘끝까지 사랑’하신 예수님의 본보기 안에서 ‘희망’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본보기를 고민하고, 묵상하며, 기도하고 실천하는 그곳이 교회이기 때문입니다. ‘세족례와 용서’ 새로운 시대에 새로운 본보기로 하느님을 보여주신 예수님은 그래서 ‘사랑이시며 우리의 희망’이십니다. 그 예수님께 대한 희망으로 이 땅에 희망을 기도하고, 예수님께 대한 희망으로 코로나-19의 고통을 이겨내고, 예수님께 대한 희망으로 이 미사를 봉헌합니다.

 

내가 너희에게 한 것처럼 너희도 하라고, 내가 본을 보여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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