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이야기

기억하라

작성자
박진용
작성일
2020-03-15 08:15
조회
2318
기억하라

시간은 계속해서 흐르고 있습니다.

힘들고 외로웠던 시간, 그래서 투덜거렸던 시간도, 기뻐서 환호했던 시간도 어느 한 곳에 머물지 않고 흐르고 있습니다. 물이 흘러야 물인 것처럼 시간도 머물지 않고 흘러야 시간인 것입니다.

사람은 그 시간 속에서 뼈아픈 배반과 시련의 아픔을 체험하기도 하고 예상치 못한 구원과 행복을 체험하기도 합니다. 사람은 그 시간 속에서 많은 기억들을 담아내고 있습니다. 기억하고 싶지 않아도 기억되는 시간, 기억하고 싶은 데 기억되지 않는 시간, 그리고 소중한 시간들을 기억으로 남겨가고 있습니다.

엊그제 세종 요한 성당을 다녀왔습니다. 그냥 한번쯤 둘러보고 싶은 성당이었습니다. 성당 문을 열고 처음 만난 것이 ‘코로나’를 위한 ‘마스크 기부함’이었습니다. 누군가를 위한 ‘마스크 봉헌’에 동참하고 있는 신자들의 마음이 나의 가슴에서 뛰고 있었습니다. 잠시 뒤에는 줄을 서서 구매한 마스크 2개를 봉헌하고 가시는 자매님의 모습을 보면서 세례 때 받은 ‘인호’-당신은 하느님의 사람입니다.-가 세상에서 숨 쉬고 있음에 감사를 드렸습니다. 굳이 기억하려고 애쓰지 않아도 기억될 수밖에 없는 시간이었습니다. 끝도 없이 이어지는 줄서기 속에서도 셀레는 마음으로 기다렸을 자매님, 자신의 작은 노력이 누군가에게 힘이 되리라는 그 설레임은 이기적인 인간을 넘어 살아있는 신앙에 대한 고백이었을 것입니다. 그렇게 신앙을 살아내는 작은 노력들, 배려하고 기부하고 기다리는 사람이 있음을 기억한다는 것이 감사한 일이었습니다.

지금 우리 신앙 공동체가 기억해야 하는 것은 : 굳이 ‘마스크 기부’만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지금 내 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 아픈 현실을 걱정하고 확진 자들과 그 가족들을 위하여 기도하고 있다면, 소문에 소문이 꼬리를 물도록 끊임없이 문자메시지를 전하지 않고 묵묵히 이 현실을 바라보고 있다면, ‘마스크 확보, 마스크 사수’라는 두려움을 넘어 담대하게 이 현실을 아파하는 것도 ‘마스크 기부’만큼 소중한 일이요, 훗날 우리의 기억 속에서 아름다운 시간으로 기억되리라 믿습니다.

사람은 알고 있습니다. 어려움이 닥쳤을 때 자신의 행동이 무엇이었는지, ‘코로나’의 현장 속에서 우리가 바라본 시선은 무엇이었는지, 그 속에서 자신의 삶과 신앙을 어떻게 고백하였는지를... 이제는 우리의 신앙고백입니다. ‘코로나의 현장’을 보는 우리의 시선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을 보고 계시는 하느님의 시선을 우리가 묵상해야 할 때입니다.

입으로 외웠던 신앙, 나를 위하여 하느님께 매달렸던 시간, ‘코로나’의 두려움에 이기적으로 생각했던 시간을 넘어 삶 속에서 실천되는 고백이 우리의 기억 속에 담겨야 하는 것입니다. 시간이 지난 뒤, 내 자신이, 이 사회가,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어떻게 나를 기억하고 계실까? ‘코로나’의 아픈 시간들을 기억하면서 2천 년 전 다락방을 박차고 나갔던 제자들의 기쁜 소식을 기억하며 ‘코로나의 후유증’이 하느님께 봉헌되기를 기도하고 또 기도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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