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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을 기다리는 시간

작성자
junminsd
작성일
2016-11-28 09:48
조회
692

자캐오에게 말을 건네다.

자캐오에게 말을 걸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은

그의 이름을 아는 사람’,

그의 비밀을 아는 사람이다.

자캐오 같은 부류가 낫설지 않은 사람.

그의 신중함 뒤에 숨은 복잡한 이유들에

공감할 수 있는 사람이다.

그 자신이 자캐오였고 지금도 조금은

자캐오스러운 사람만이 우리 시대 자캐오들에게

참으로 공감할 수 있는 것 같다.

 

한 통의 편지

그는 자신의 무신론을 자랑스럽게 선언하며,

그리스도인들의 신앙을 산산조각 내고

하느님이 존재하지 않음을 입증하고

성경이 얼마나 터무니없는지 보여 주겠다고 약속했다.

그는 어린 손녀딸이 암으로 죽었다고 털어놓고 있었다.

적어도 자신의 관점에서는

하느님의 존재를 영구히 부정하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던 그가 갑자기

 하느님께 엄청난 욕설을 퍼붓고 있었다.

당신은 손발에 피를 묻힌 폭군이야.

나는 당신을 저주한다고!”

하느님을 저주하고 싶으면 최소한

하느님의 존재를 믿기는 해야 한다.

그래야 나의 바람과 기준에 부합하는 신이

되어 주지 않았다고 원망하고,

내가 생각하는 신의 마땅한 역할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고 탓할 수라도 있다.

살아계신 하느님에 대한 믿음은 본디 대화이며,

그 대화에서는 울부짖으며 대들 수 있는

 여지도 열려있다.

신앙은 불신앙을 끌어안음으로써만

불신앙을 극복할 수 있다.

 

알지 못하는, 그러나 너무 가까운

우리가 그분을 보지 못하는 것은

그분이 너무 가까이 계시기 때문이다.

그분은 우리보다 훨씬 위에 있는 존재가 아니라,

우리 삶 깊숙한 곳, 우리 안에 존재하신다.

우리는 그분 안에서 살고 숨 쉬고

움직이고 존재한다.

그분은 우리에게 가까이계신 것이 아니라

가까움 자체이시다.

 

파스카의 거울

바오로가 절대적이라고 여긴 것,

그리스도 안에 살아가는 새로움앞에서

그 모든 장벽은 상대적인 것이 되었다.

우리 모두 부름 받고 있는 자유,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해방시키신 목적이기에

무슨 일이 있어도 우리가 지켜 내야 하는

자유를 성취한 것이다.

하느님의 논리는 인간의 논리와 다르다.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얻을 것이다.”

행복하여라. 가난한 사람들!“

이 모든 역설 가운데 으뜸은

그리스도교 신학의 핵심에 있는 두 가지 신비,

곧 육화와 구원, 구유의 하느님과

교수대의 하느님이다.

 

돌을 모을 때

인간 삶의 시간은 강물처럼 앞으로 쭉 흐르는 시간,

시계와 달력의 시간인 크로노스이기도 하지만,

기회의 시간, 무르익은 시간,

그 무엇을 위한 때인 카이로스이기도 하다.

오늘날의 자캐오가 이름을 불러 주기를

기다리는 지금은 어떤 때인가?

지금은 돌을 모을 때다.

지금까지 충분히 많은 돌을 던져 왔으니,

이제는 가까워질 때다.

 

고칠 때

샬롬은 회복된 평화다.

하느님과 사람, 사람과 자연의 화해,

사람과 인류 가족의 상호화해,

인간 마음의 깊은 평화를 뜻한다.

기억의 정화

과오로 고통 받은 많은 아픈 기억과

정신적 외상을 단순히 무의식 속으로

옮겨 버리지 않으려는 태도를 뜻한다.

  -본문에서-

 

하느님을 기다리는 시간

대림 첫주, 진보랏빛 초,

나의 부족함과 죄로 멍든 몸은

오늘도 기꺼이 자신을 내어놓는다.

하느님의 시간으로 채워주기 위해,

 

세월호, 촛불집회, 누추한 구유, 십자가 고통.

시간은 공간보다 위대하다.’

시간의 주인이신 하느님 안에서

모두 함께 자유롭게 일하고

사랑할 수 있는 은총을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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