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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 사순 제 3, 4주간 복음말씀 묵상글 묶음

작성자
김성은
작성일
2020-04-18 15:20
조회
239


사순 제 3 주간

2020. 3. 15 사순 제 3 주일

오늘 복음 말씀에서 믿음의 싹이 자라서 우리 마음에 우리 가슴에 깊은 뿌리를 내리는 그 과정을 사마리아여인을 통하여 보여주십니다.

고대하고 있던 메시아를 알아보고서 기뻐하며 한걸음에 달려가는 이방인이었던 사마리아여인~~

지금 나 자신은 나에게 찾아오신 주님을 얼마나 잘 알아보고 있는지, 주님께서 부르시는 그 목소리에 얼마나 잘 듣고 따르고 있는지, 과연 나 자신은 나의 믿음을 다른 이에게 사마리아여인처럼 기쁨이 가득찬 목소리로 증언할수 있는지~~

나의 내면의 목소리에 귀기울여
나와 함께 하시는 주님과 사랑의 대화를 나누며, 주님의 사랑의 말씀을 알아차리고 따를 수 있도록 거룩하신 성령께서 함께 하여 주시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입니다.

~~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 여자에게 말씀하셨다. '' 너와 말하고 있는 내가 바로 그 사람이다.'' 요한 4,25

그러므로 믿음으로 의롭게 된 우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느님과 더불어 평화를 누립니다. 로마 5,1

2020. 3. 16 사순 제 3 주간 월요일

요즈음 처럼 하루 하루의 일상이 불안함과 아득함에 휩싸인 때가 드문 것 같습니다. 거의 매 시간이다시피 할 정도로 재난문자가 떠고, 직장에서도 정해진 시간마다 개인 위생 수칙을 강조하는 안내방송이 나옵니다.

이정도이면 스트레스가 아니라 거의 정신적 트라우마 수준입니다. 복음 묵상글을 입력하는 중에도 재난문자가 나타나서 글쓰기를 잠시 중단하였습니다.

지금 이 시간
우리는, 아니
나 자신은 무엇을 위해 사는 걸까요?
점점 시간이 갈수록
나이를 한살 한살 더 먹어 갈수록
괜실히
서글퍼지까지 합니다.

지금껏 무엇을 얼마나 이루어 놓았고
또 몇 년 남은 길지 않은 재직 기간동안 무엇을 어떻게 준비하여야 얼마인지 모르지만
주님께서 저에게 주신 삶의 기간동안
적어도 초라하지 않게 살아 갈수 있을지~~
잠시나마 잊고 있다가도 문득 문득 떠올리면 한편으로 암담해지기까지 합니다.

사회적으로는
이런 저런 규제나 법령으로 정년 후의
제 2의 인생을 준비하는데에 도움보다는
방해하는 벽의 역할을 하려 듭니다.
무슨무슨 재취업 제한 규정 어쩌고 등등 ~~

반갑고,
밝은 뉴스 보다는
어둡고,
힘 빠지게 하는
뉴스들이
안팍으로 넘쳐 나는 요즘입니다.

마음으로는
내려 놓아야지,
비워야지
하면서도
현실에서는
그게 잘 안 됩니다.

이런 때 일수록 마음을 다잡고
속으로 혼자 주님께 매달려 봅니다.

한 치 앞을 내다 볼수 없는
이 나약한 영혼을 불쌍히 여기시어
지혜와 용기를 달라고~~

아마도 아직도 정신적인 나이를
덜 먹었나 봅니다.

주님의 보살핌 안에서 하루 빨리
어둠의 터널을 벗어났으면 하는 바램
간절합니다.

자비로우신 주님, 저를 지켜주소서. 아멘.

2020. 3. 17 사순  제 3 주간 화요일

오늘 복음말씀에서 나 자신 스스로가 얼마나 용서함에 인색한지, 자비를 베품에 모자란지 다시금 되돌아 봅니다.

이미
나 자신은
주님께서 주시는
자비와 용서와 사랑과 은총을
매 순간 받고 있고
받아 왔음에도

나 자신은
내가 받은
사랑과 용서와 자비로운 베품의 마음 씀씀이를 넉넉히 열어 줄 만큼의 여유도 없이 옹색해져 버렸습니다.
내가 아프고, 지칠 때 받았던 그 베려의 마음들을 어느새 까마득하게 잊고 지냅니다.

오늘 복음 말씀처럼 내가 이미 용서 받았으니, 내가 미워하고, 비난해왔던 이를 위하여 기도하고, 그들의 아픔이 치유될 수 있도록 그들에게 주님의 사랑과 은총이 가득하기를 간구하나이다. 아멘.

2020. 3. 18  사순 제 3 주간 수요일

오늘 복음 말씀은 율법의 본질을 제대로 인식하고 스스로 율법을 지키면서 그렇게 제대로 지킬수 있도록 가르치는 사람이 큰 사람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한 자
한 획도
벗어남 없이

율법을 폐지하러 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완성하러 왔다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법이라는 글자를 보면
왠지 거북스러운 마음이 먼저 듭니다.
반드시 지켜야 하는 규정.
그것을 어기면 그에 상응하는 처벌이나 페널티가 주어지는 강제조항.

하지만
조금 다르게 보면
나를 이끌어 주는 방향타와 같은 역할을 하고, 거친 바다에서 암초에 부딛치지 않고 안전하게 항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등불과 같은 역할을 해준다고도 생각합니다.

우리 힘든 일상 속에서
방향을 잃고 방황하지 않도록 이끌어 주는 삶의 네비게이션과도 같은 것이 율법, 계율, 계명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하루를 시작하면서
무엇인가를 계획하고
그 계획을 지키도록 최선의 노력을 하리라고 나 자신과 약속합니다.

오늘 하루를 내가 지켜야 할 무엇인가를 마음에 새기며 옆길로 새지 않고 가야 할 정해진 경로를 잘 따라 갈 수 있도록 지켜달라고 기도하며, 하루를 마감할 때쯤 흐트러지지 않고 오늘 하루의 순례길을 잘 지켜 왔다 싶은 날엔 나 자신에게 대견스러움을 느끼며

오늘도 수고했어~~
주님, 감사합니다. 오늘 하루도 잘 지켜 냈습니다. 아멘.하며 감사의 기도를 드립니다.

늘 나와 함께 하는 생의 이정표 같은 존재가 율법이 아닐까요~~~!!

2020. 3. 19 사순 제 3 주간 목요일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배필 성 요셉 대축일

오늘 복음 말씀에서는 의로움과 믿고 따름의 순명의 의미를 가르치십니다.

마리아와 약혼한 요셉이 마리아의 잉태소식을 접하고 남몰래 고민하다가 조용히 파혼하려는 마음을 먹습니다. 당시 율법으로 보면 처녀가 아기를 수태한 그 자체만으로도 아주 큰 죄이기에~~
이러한 사실을 알리지 않고 마리아를 위하여 깊이 고민한 끝에 결심을 합니다.
그러다가
꿈에 나타난 주님의 천사의 명령에 그대로 따르며 믿음으로 순응합니다.
그리고
아기 예수가 태어 나고, 또 태어 난 후에도 동정 마리아를 지켜주며 주님께서 요셉에게 내린 소명을 다하면서 메시아 이신 예수님을 위하여 모범적인 육의 아버지 역할을 충실히 해냅니다.

이러한 요셉의 믿음에 충실하고
하느님께서 주신 소명을 다하는 진실된 의로움을 본받으며, 믿음의 조상이신 아브라함의 신앙적 모범을 따르도록 나약한 나 자신의 반성과 신앙적 노력에 더욱 마음을 다해야겠습니다.

과연
주님의 부르심에 주님께서 주신 소명을 한 마디 대답으로 '네, 주님 제가 따르겠습니다.'라고 할 수 있을 지 솔직히 두렵기도 하고 자신이 없어지기도 합니다.

내 안에는 너무도 많은 방해꾼들이 있나봅니다. 아마도~~

2020. 3. 20 사순 제 3 주간 금요일

오늘 복음 말씀에서 오직 한 분이신 하느님을 온 몸과 마음으로 믿으며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고 가르치십니다.

제 자신이 느끼기에
이 가르침이 진정으로 실천하기에 가장 어려운 가르침이지 않나 싶습니다.

늘 고민스럽기도 한 부분이지만
현실을 살면서 행동으로 보여주지 못하는 것들에 대한 일종의 양심적 가책을 느낄 때가 많습니다.

때로는 적절하게 현실과 타협하기도 합니다.
정도에서 지나치게 벗어난다거나 또는 나의 신념과 현격한 차이가 있는 상황에서는 쉽게 타협하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특히, 직장에서 내가 수행하는 연구 업무와 관련된 부분에서는 공학자로서의 양심을 저버리지 않으려고 애를 쓰다 보니 본의 아니게 타인과 부딪치게 되는 상황도 발생합니다. 이런 때마다 항상 솔로몬의 지혜를 생각하기도 합니다.

이 세상에서 혼자 독불장군은 없기에 ~~
가장 어려운 것이 관계의 역학을 여하히 매끄럽고 부드럽게 이어가느냐 하는 문제인 것 같습니다.

이웃을 나 자신처럼 사랑하라 ~~
이것을 잘 실천하기 위해서는 그 밑바탕에는
내가 나 자신을 진실로 아끼고 사랑할수 있어야 그 사랑의 에너지를이웃에게도 쏟아낼수 있지 않을까요~~
이기적이고, 이타적이고 하는 문제를 떠나서
근본적인 단계를 놓고 봤을 때 ~~

그럼에도 불구하고

'네 이웃을 네 자신처럼 사랑하라'는 가르침의 본질을 더욱 깊이 고민하게 됩니다.
고민에 앞서 행동으로 선뜻 옮기지 못하고 있는 나 자신이 부끄러움을 느끼면서,
어느 장애우의 예쁜 손에 들린 마스크를 살며시 두고 가는 그 모습을 보면서~~

2020. 3. 21 사순 제 3 주간 토요일

오늘 복으말씀에서는 하느님 전에서의 바리사이와 세리 두 인물의 대조적인 모습을 보여주십니다.

두 인물의 모습을 통해서 의로움과 구원이라는 하느님의 은총이자 선물이 어떻게 우리에게 주어 지는지를 깨닫게 해 주십니다.

''하늘을 향하여 눈을 들 엄두를 내지 못하고 가슴을 치며'' 자비를 청하는 세리의 모습이 더 진실되고 참된 모습으로 다가 옵니다.

이 세상은 저마다 각자가 모두
스스로 자기가 최고이며 가장 잘난 사람이라고 여길것입니다. 물론, 스스로를 올려주는 자신감과 자존감이 참 중요한 요소이기도 합니다. 단, 이러한 감정과 의식이 정의로움과 의로움의 기반 위에서 갖추어진 진정한 인격과 품격일때 스스로에 대한 자존감과 자신감도 빛날것이고 모든 이들에게서 선한 눈빛을 받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현실에는 그렇지 못한 이들도 참 많습니다. 최고 인양 유아독존, 안아무인 격의 소인배들도 심심찮게 볼 수 있습니다.
빈 깡통이 요란한 소리를 내듯이, 턱을 꼿꽃이 세우고서 당장 지금 자신의 지위와 알량한 그 자리의 위세를 등에 없고 상대적으로 자기보다 조금 약하다 싶은 이에게 모욕적인 언행을 아무렇지 않은듯 내뱉으며 반대로 자신 보다 힘을 좀 더 가진듯 싶으면 온갖 아첨과 아양을 떨며 소위, 줄 타기에 여념이 없습니다. 그런 부류들을 보면 참 한심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오늘 복음말씀에서 보인 세리의 모습에서
하느님 앞에서 한없이 부족한 자신을 향하며 하느님께 진정으로 청하는 세리에게 하느님께서는 의로움이라는 선물을 주십니다. 하느님으로부터 인정을 받은 것입니다.

이 한 말씀을 가슴에 담고 마음에 새기고자 합니디.

세리는 멀찍이 서서 가슴을 치며 말하였네.
하느님 ! 이 죄인을 불쌍히 여기소서.
루카 18,13

사순 제 4 주간

2020. 3. 22. 사순 제 4 주일

오늘 복음말씀에서는 태생 소경이 주님의 은총으로 눈을 뜨게 되면서 메시아 이신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바로 그 앞에 계셨음을 깨닫습니다. 믿음의 눈으로 주님을 영접하고 주님을 따르게 됩니다.

그러나 바리사이들은 자기들 스스로 볼수 있는 눈을 가지고 있고 그들 스스로가 의롭고 죄가 없다고 주장하며 틀에 박힌 안식일에 대한 말들을 늘어 놓습니다.

또한, 오늘의 독서에서 바오로 사도께서는 여러분은 이제 어둠에서 벗어나 진정한 빛 안에 있다고 하십니다.

떠 있는 볼수 있는 눈을 가졌으되 주님의 시선으로 볼수 없다면 그것은 눈떤 장님이나 다를 바 없을 것입니다.

우리 세상에는 볼 수 있는 눈을 가졌으면서도 무엇이 참된 것인지,무엇이 그 때와 상황에서 가장 절실하게 필요한지를 구분할줄 모르는 눈떤 장님들이 아니라,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고, 얄팍한 계산과 지능적인 정치적 의도를 깔지 않고 솔로몬과 같은 지혜의 눈을 가진 그런 리더들이 절실히 필요한 때인 것 같습니다.

4월에 있을 그 날엔 그 어느 때 보다 크게 눈을 뜨고 지혜로운 판단이 필요하리라 생각합니다. 지금보다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하여~~

아마추어 같은 생각정도 밖에 할 줄 모르고 자리 타령이나 하고 금 뺏지의 진정한 의미도 모른체 세치 혀를 쉽게 휘두르고 하는 그런 부류들은 철저히 가려내는 날카로운 눈이 필요하고 냉정한 판단이 필요한 때입니다.

오늘은 이렇게 간절하게 기도드립니다.

주님, 저에게 맑은 눈을 주시어 주님의 가르침에 따라 지혜로운 생각과 겸손과 온유의 빛을 주소서. 아멘.

2020. 3. 23. 사순 제 4 주간 월요일

오늘 복음말씀에서는 이방인 왕실 관리의 아들을 고치시는 표징을 통하여 보지 않고도 믿을수 있는 마음을 가르치십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너희는 표징과 이적을 보지 않으면 믿지 않을 것이다''라고 하십니다. 복음말씀 속의 왕실관리는 아들을 고쳐 주시는 예수님의 표징을 통해서 예수님을 믿게 되고 온가족이 예수님의 복음을 받아 들이면서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고 전합니다.

표징과 이적, 계시,

간혹 이런 이야기도 듣습니다.
간절한 기도 지향을 두고 온 마음을 다하며 기도 드리는 동안 주님의 함께하심을 몸소 체험하면서 더욱 신앙이 깊어졌다는 신앙고백의 말도 들을 때가 있었습니다.

그런 이야기를,
그런 고백을 듣고 있노라면
아~~ 나는 뭐지~~?
꿈속에서 주님의 천사가 와 주셨던 같지도 않고,

또 부끄럽지만 주님의 목소리가 들릴 정도로 깊은 관상의 영적단계에 가보지도 못했고,
간절한 지향으로 9일 기도와 같은 묵주기도를 온 정성을 다하여 성모님께 드리지도 못했습니다.

그저 일상 속에서
힘들 때면
마음이 산란해질 때면
나 자신이 흐트러지며 유혹에 굴복한 뒤에 참회의 마음으로 용서와 자비를 청할 때
일상생활에서 부디 아무런 사고나 아픔이 생기지 않고 주님께 저를 지켜 주소서 하는 마음으로 주님께 기대며 의탁 할때
사랑하는 내 자식들을 주님의 은총으로 지켜 주십사고 청할 때

이런 때에 주님을 찾고 매달리기도 하고 의탁하기도 하고 은총을 주시는 주님을 찬미하여며 감사드리기도 합니다.

어찌 보면
참으로 소박하고
또 한편으로는 깊이도 없어 보입니다.

그러나
이 한 말씀은 늘 가슴에 새기고 삽니다.

''보지 않고도 믿는 이는 더 행복하다.''

예수님의 말씀과 삶을 통하여 보여 주신 사건과 하느님께서 드러내시는 계시를 통하여 믿음을 가지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는 가르침을 깊이 인식하고, 받들며 살려고 노력합니다.

이렇게
매일 복음말씀을 읽고
마음에 새기면서 말입니다.

2020. 3. 24. 사순 제 4 주간 화요일

오늘 복음말씀에서는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벳자타 못에서 병든 이를 고쳐 주십니다.

그 병든 이는 어느 누구보다도 절박하고 애가 타는 마음이었을 것입니다. 주님의 천사가 물을 출렁이는 순간에 맞추어 내가 못에 들어가기만 한다면 내 몸이 나을 수 있는데 당장 내 몸을 제대로 움직일 수 없으니 남들보다 쳐질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 그에게
예수님께서 건강하고 싶으냐고 물으셨을때 절박한 심정으로 예수님께 호소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마음을 아시고 병을 고쳐 주십니다. 그러나 유다인들은 안식일에 병을 고쳐 준 그 사실을 들면서 예수님과 본격적인 대립을 하게 됩니다.

여기서
이런 생각을 해 봅니다.
규정의 올바르고 정당한 적용과 문장으로 적힌 규정 너머의 의미를 생각하는 지혜로움과 융통성의 균형이라는 측면을 떠올리게 됩니다.

요즈음 처럼 답답하고 한편으로 절박한 마음마저 들었던 적이 별로 없었던것 같습니다.

참고, 견디고 진지한 마음가짐이 필요한 때이지만 어김없이 찾아 오는 봄의 전령들의 손짓에 모든걸 던져 놓고 밖으로 나가 따스한 햇살을 즐기고 싶어집니다.

연일 쏟아지는 그렇고 그런 뉴스들
게다가 한술 더 떠서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무책임하게 뱉어내는 정책들~~
결국 그런 정책들이 또다시 애꿎은 유리봉투 봉급쟁이들의 가늘어진 허리를 더 동여매도록하는 가죽끈을 더 보태는 꼴이 될것 같은 예감이 들어 마음이 답답해집니다.

제발 아마추어들이 아닌 진정 프로들이 신의 한수를 두듯, 넓은 혜안의 눈과 솔로몬의 지혜를 담은 소식들이 전해지길 고대해 봅니다.

2020. 3. 25. 사순 제 4 주간 수요일
주님 탄생 예고 대축일

오늘의 기도

무엇이든 가능하시고
전지 저능하신 주님,

오늘의 이 시련이 진정 주님의 뜻이라면
주님께 저를 지켜 주시고 보호해달라는 청을 드리기에 너무나도 부끄럽사오나,

주님의 권능과 자비하심과 사랑으로
저희에게 은총을 베푸시어
하루빨리 이 답답하고 괴로운 시간들이
지나고 다시금 주님께서 비추어 주시는
햇살을 머금고 기쁨과 평화의 마음으로
평온한 일상으로 되돌아 갈수 있도록
자비를 베풀어 주소서~~~!!!!
아멘.

2020. 3. 26. 사순 제 4 주간 목요일

오늘 복음 말씀에서 하느님의 뜻에 따라 모든 것을 행하시는 예수님의 구원을 위한 활동과 업적을 통하여 진리를 드러내십니다.

하느님을 믿는다고 말하면서도 유다인들은 하느님의 아드님으로서 이 세상에 파견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유다인들과 우리들에게 성경의 말씀을 통하여 영원한 생명을 얻으라고 가르치십니다.

말씀을 통하여
주님께서 이끄시는 진리의 참뜻을 새기고 또 새기면서, 거룩하신 성령께서 저희의 눈과 귀를 열어 주시에 주님의 가르침에 따라 맞갖은 삶을 살수 있도록 저희에게 은총을 베풀어 주소서. 아멘.

2020. 3. 27 사순 제 4 주간 금요일

오늘 복음 말씀에서는 예수님을 메시아로 받아 들이지 않고 예수님을 해치려는 유다인들의 모습을 보여 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 나는 나 스스로 온 것이 아니다. 나를 보내신 분은 참되신데 너희는 그분을 알지 못한다. 나는 그분을 안다. 내가 그분에게서 왔고 그분께서 나를 보내셨기 때문이다.''

복음말씀을 읽고 묵상하며
또 성경말씀을 읽으면서 진리의 참된 의미와 가르침을 얼마나 진실되게 알아 차리고 말씀의 가르침에 따르고자 하는 나의 모습이 진정 참되며 주님께서 보시기에 좋은 모습인지 나 자신을 다시금 되돌아 봅니다.

2020. 3. 28 사순 제 4 주간 토요일

오늘 복음 말씀에서는 우리를 구원하실 오직 한분의 메시아이신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어떤 분이신지에 대한 물음을 던집니다.

예수님 시대에 예수님께서 메시아이심을 군중들은 이미 깨닫고 기쁘게 받아들입니다. 그러나 바리사이와 율법 학자들은 애써 부정하며 예수님을 해치려는 생각에만 빠졌있습니다.

우리의, 나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고난을 받으신 분, 종말때에 우리를 구원하여 주실 그분을 위해 나는 과연 무엇을 해야 할까요~~!!!

나의 믿음의 성전이 깨끗한지부터 냉정히 살펴야겠습니다. 아직도 주님 말씀의 참뜻을 깨닫지 못하고 우왕좌왕하곤 합니다.

참뜻으로 나의 믿음을 더욱 강하고 깊게 함으로써 주님의 종으로서 주님의 부르심에 진실되게 답할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는지 나 자신 스스로 깊이 성찰해야겠습니다.

메시아이신 그리스도 예수님,
당신께서는 진정 저에게 어떤 강한 우박도 거뜬이 받아낼수 있는 우산이 되어 주시며, 마음의 중심을 잃고 방황할 때면 넘어지지 않게 붙들어 주시는 버팀목이 되어 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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