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어린 시절 생손앓이의 기억이 있다. 그 아픔의 기억을 <하느님, 당신 때문에 생손앓이>라는 절묘한 표현력으로 풀어낸 김혜윤 수녀의 책이 반가웠다. 내 삶의 전부가 아닌 어느 한구석만 하느님께 믿고 맡길 수 있는 것이 조금 성숙해진 신앙이라 여기던 시절이 있었다. 하느님은 나의 든든한 도성으로만 머물러 주기를 바라며 나의 중심은 현세적인 행복추구와 자아완성의 욕망에 있었다. 내가 누구인지 조차 제대로 알지 못한 채 나 자신과 치열하게 싸우는 시간은 참으로 많이 아팠다. 그때 수녀님의 성문서와 지혜서 해석은 내 인생의 생손앓이에 처방전이 되어 주었다.

나를 다시 그 시간의 기억 속으로 들어가게 한 가슴으로 읽는 성경 에세이’- 하느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성경필사를 시작하여 구약 욥기를 필사할 때였다. ‘도저히 이해 할 수 없는 욥의 고통이 나한테 전이되었나? 필사를 중단해야 하나?‘ 어리석게 미신 같은 생각까지 할 만큼 힘든 시간이었다. 육체적인 고통을 넘어 어디가 아픈지 몰랐고 어떻게 누구한테 설명해야 할지 몰라 또 다시 하느님께 원망하며 대들었고 애원하며 매달렸다. 세상의 기준으로 이루려 했던 자아완성 뒤로 미루어둔 성경공부를 시작했다. 그 과정 안에서 그 때 고통의 의미를 서서히 깨달아갔다. 결정적인 해답은 바로 하느님과의 진정한 관계 안에 있었다. ‘하느님과의 진정한 관계성 모색: 인간 삶의 해방과 자유는 하느님과의 만남을 통한 진정한 관계성 안에 숨어있다. 하느님과의 만남이 삶의 모든 문제를 풀어갈 수 있는 근원적 체험이다.’

하느님, 당신 때문에 생손앓이- ‘성장의 아픔은 어른이 되어서도 계속적으로 감당해야 해야 할 생의 과제’, ‘우리가 반복적으로 경험하는 마찰과 두려움은 세상을 하느님의 질서에 맞추지 못하고 나의 질서에 맞추기 때문에 생겨나는 것이라 한다. 내가 겪은 아픔도 하느님 품에서 벗어나 내 안에 나를 가두려는 내적인 머묾과 떠남의 자리에서 생겨나는 아픔, 그런 나를 끊임없이 끌어안고 가시려는 하느님 사랑의 아픔이다. 누군가 그랬다. 정말 아름다운 것을 보면 조금 슬프다고, 저자는 아픔이 숨겨진 아름다움을 말했다. 그것이 하느님과의 사랑이 아닐까? 충만한 사랑 안에 머무는 기쁨을 체험하고도 순간순간 벗어나고 싶어 하는 나, 그런 나를 변함없이 애처롭게 바라보며 기다리는 하느님,

210일 김혜윤 수녀님의 특강이 기대된다. '만남의 신앙 그리고 복음화'- 늘 새로운 시간 안에 나를 초대하는 하느님, 그 안에 현존하는 당신의 사랑을 기억하라 하신다. ‘우리들의 아름다움은 자기완성과 자기만족이 아니라 미완성채로 하느님의 손에 자신을 맡기는 데서 나옵니다. ‘삶을 대하는 가장 현명한 모습은 완벽한 삶에 대한 추구가 아니라 성실한 삶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