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그 소중한 만남들에 대하여..."

                                        (한무숙 선생의 '만남 1과 2'를 읽으면서...)


                                                                                                                                                                   김  성은  그레고리오,  2017. 10. 28(토)




뜨거운 여름이 지나고 이제는 제법 찬 기운이 느껴지는 계절이다....


늘 이맘때면 계절변화의 느낌을 더욱 선명하게 받게 된다.

낮시간의 따스한 햇살보다 저녁시간에 느껴지는 싸늘함이 더 크게 다가오는 것이

우물쭈물하다가 금세 겨울이 와버릴 것만 같은 초조함도 들게 한다.


직장에서건, 개인 생활에서건 10월, 11월은 참 바쁘게 지나감을 해가 갈 수록 더욱 깊이 느끼게 된다.


신심서적을 매달 챙겨 두었다가 바로 읽어 보거나, 아니면  시간이 좀 지난 뒤에라도 읽어보곤 하는데

이번 9,10월의 신심서적으로  소설의 형식을 갖춘 '만남 1,2'를 펼쳤다.

비록 소설형식으로 이야기를 풀어가고 있지만 내용상 우리나라 가톨릭 신앙의 뿌리를 알아볼 수 있게 하는 점에서

신앙의 뿌리가 그리 깊지 않은 나로서는 그야말로 반갑고,

고마우며, 감사한 은총의 '만남'으로 다가온다.


특히,  개인적으로 이수하고 있는  가톨릭교리신학원[서울] 의  '통신신학교육과정' 1학년 2학기

두 과목 중 한 과목이 '한국천주교회사'여서 더욱 그런 것 같다.


하지만, 이번 만큼 책을 읽고 난 후의 느낌이나 감상을 적는다는 것이

망설여지는 경우는 드문 것 겉다.


돌이켜 보면 나의 가톨릭 신앙생활은 지나온 물리적 시간에 비해서

그 신앙적 깊이의 얕음으로 인하여 부끄러움이 앞선다.


책을 읽는 중간, 중간

내 인생에 있어서 특별한 의미로 다가오는 소중한 '만남'들에 대한 여러 가지 '상념'으로 인하여 걸음이 멈춰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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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그리운 수녀님....(나의 소중한 첫 '만남')



나의 신앙적 첫 ' 만남'은 1982년 2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35년 전, 짧은 머리의 교복 세대였던 고등학교 2학년 때였으니 짧은 세월은 아니지 싶다.

고교시절 단짝 친구가 독실한 가톨릭 집안의 자제이며,

그 친구의 형님께서 사제서품을 받을 정도였으니

나에게는 과분할 정도의 신심 깊은 친구를 대부님으로 모시고 1982년 8월 11일에 드디어 주님의 자녀로 거듭나며

영세를 받았다.

주님께로 다시 돌아온 지금도 우리 가족 중에서 나 혼자 외톨박이 신앙생활을 하고 있지만,

세례 받을 당시에도 우리 집안에서 나 혼자 가톨릭 신자였다.


그런 면에서 중간에 세례 받으신 형님, 형수님의 신앙적 도움은 내겐 커다란 버팀목이 되어주고 있어 참으로

고마운 마음이다. 가끔 그때(고교시절) 영세식을 마치고 찍었던 기념사진을 볼 때면 아련한 추억에

잠기게 된다.


6개월간의 교리강의를 전담해 주셨던

김 글로리아 수녀님께서는 지금쯤 아마도 할머니 수녀님으로

어디에선가 건강하신 모습으로

주님 안에서 살아가고 계시지 않을까...?

세삼 그리워진다.

참 자상하시고 좋은 분이셨는데...


내 인생에서 그리 많지 않은 소중한  '만남' 의 첫 번째 주인공이셨던 셈이다.

물론 내 가족을 빼고서 말이다.


그때 기억으로 당시 본당 주임신부님께서 아주 엄격하셔서 미사에 빠지기라도 하면 불호령을 내리셨고,

미사를 봉헌하며 영성체를 위하여 두 시간 전에는 식사를 다 마치도록 하셨던 기억이 난다.


대학을 진학하면서 형님이 계시는 대전으로 오게 되었고,

가톨릭 동아리에서 대학시절동안 신앙생활은 나름대로 이어갔지만

솔직히 지금처럼 그리 열심(?)은 아니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대학원 시절...

시간에 쫓기며 바쁜 생활을 하며 지낸다는 핑계로

차츰 냉담하기 시작하던 것이

25년의 세월로 이어지면서,

배우자 역시 비 신자인 지금의 아내를 만났다.




2. 나의 '멘토'가 되어 준 후배님...(나의 소중한 두 번째 '만남')



내 인생에 있어서 특별한 영향을 준 두 번째 '만남'은

지금까지 28년 세월을 한 곳에서 근무하고 있는

현재의 직장에서 만난

나의 소중한 후배 동료이다.

연구소 특성상 자기 전문 분야에서 자리를 이동하는 경우가 자주 있지는 않다.


국가적 정치상황이나 정권이 바뀔 때면 의례적으로 이어지는 인위적인 조직개편 외에는

특별히 자리변화가 없는 곳이 내가 종사하고 있는 과학기술(로켓기술)분야라고도 볼 수 있다.

 1990년 3월에 대학원 석사과정을 마치고, 

지금의 직장에 첫 발을 디디면서 입사 때부터 5년간의 의무복무(군복무 대체기간)를

마친 뒤로도 줄곧 외길인생이라 할 만큼 지금의 전문 분야에서 일하고 있는데,

나보다 2년 뒤에 입사한 후배 동료가

내 인생에 있어서

정신적인 '멘토' 역할을 톡톡히 해주고 있어 참으로 고마운 마음을 갖고 있다.


누구나 그렇듯이 긴 세월동안 직장생활을 하다보면

나와 코드(성격이나 업무 스타일 등)가 잘 맞는 동료가 있기도 하지만,

특히, 나와 성격이나 여러 가지 면에서 잘 맞지 않는 누군가와 함께

10년 가까운 시간동안 부대끼며 일을 해나가야 하는

그 상황들 자체가 나에겐 심적으로 힘들었던 시절이 있었다.


주변에 대한 '배려심'이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보려 해도 보이지 않는 그런 이기적인 인간성,

조직 내에서도 공통적인 견해를 피력하게 하는 그런 인물과 직접적인 업무 파트너로 일을 하자니

그 고통(?)이 이만 저만이 아니었다.


게다가 그런 동료와 어쩔 수 없이 2 주 가까운 기간동안 해외출장을 갔을 때의 상황은

한 인간에 대한 미움과 거부감이

점철되어 내 인내심의 한계가 어디까지인가 할 정도의 상황으로 가기도 하던 때 였다.

결국 무사히 해외출장기간을 마무리하고 돌아왔지만

그 파트너 동료와의 관계는 최악의 상황이 될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힘든 시기에는 나와 가장 가까운 지기인 아내에게 조차도 말을 꺼내기 조심스러운 부분이 있게 된다.

그런 이야기를 듣는 것 자체가 아내에게는 부담을 주는 것일 수도 있기 때문에

결국 나 혼자 속으로 삭이자니...

그 정신적인 스트레스는 상당히 크게 다가왔었다.

누군가에게 나의 힘들어 하는 '속' 의 이야기를 털어놓고

따뜻한 '위로' 의 말 한마디를 듣고 싶었는데...


너무나 고맙게도 나의 '정신적 멘토' 가 되어준

온유한 그 후배 동료는 따뜻한 위로의 말과 함께

마음을 다스릴 수 있는 좋은 글을 보내 주거나,

읽을 만한 책들을 추천해 주곤 하였다.


뿐만 아니라,

그 친구는 사실 독실한 개신교(기독교) 신자이면서도

서로의 입장과 개인의 종교적인 신념을 진심으로 배려하고 존중해주는

그런 '신앙적 어른스러움' 이

내마음을 더욱 사로잡았던 것 같다.


그런데...


나를 힘들게 했던 그 미웠던 파트너 동료로 인해서,

정말 중요한 사실을 뒤늦게

나 자신 스스로

뼈저리게 깨닫게 된 것이 있다.


그토록 나와 잘 맞지 않아 힘들게 만들었던 그 업무 파트너 동료로 인하여

'나 자신을 진정으로 되돌아 볼수 있는 성찰'의 시간을 갖게 되었다는 점이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나 자신 스스로 가지고 있는 문제점'에 대하여 깊이 생각해보게 되었고,


그러면서,

나 자신에게 모자랐던 타인의 입장을 역으로 생각해보는

 '역지사지' 의 가르침을 깊이 깨닫게 해 줬다는 점에서

지금도 앙금이 완전히 가신 것은 아니지만 한편으로 고마운 마음도 든다.




3. 다시 주님의 품으로...(나의 소중한 세 번째 '만남')



무더위가 한창이던 작년 8월 16일에 사랑하는 나의 어머님을 하느님 곂으로 보내드렸다.

돌아가시기 몇 달 전 기간동안 가끔 어머니를 뵈러 갈 적마다 못난 '막내아들' 을 걱정하며,

안타까워하며 바라보시던 눈물 고인 어머니의 모습을 잊을 수 없다.


지금도 어머니를 떠올리면 눈물이 난다.


불효했던 그 죄스러운 마음에서...

무심했던 그 소흘한 마음에서...

살아 계실적에 좀더 자주 찾아뵙고, 자주 바라봐 드릴껄 하는

후회의 마음에서 내 가슴이 저미어 온다.

뒤늦게 42살의 나이에 하나 더 얻은 아들자식이기에 더욱 안타까운 마음이 드셨으리라...!!!


주님 곁으로 가시기 두, 세달 전 쯤 가끔 찾아 뵐 때마다

유달리 내 귓가를 때리며 크게 들려오는

어머니의 그 나지막한 한마디 말씀...


" 잘 살래....? "


사실 그 당시 나는 말로 표현하기 쉽지 않은 뜻 모를 '공허함' 으로 힘들어 하던 시기였다.

마치 나 자신의 영혼이 메말라 가는듯한 그런 마음...

왜 그랬는지 지금도 이해가 잘 안되지만 나름대로 힘들어 하던 시기였는데,

그 사실을 아실 리 없지만

 '마치 나의 그런 마음을 다 알고 있다' 는 듯이

나를 애처롭게 바라보시던 어머니셨다.


고왔던 나의 어머니를 마지막 순간까지 내 가슴에 끌어안고

주님 곁에서 영원한 안식을 누리시기를

진심으로 기도하며 보내드렸다.

가슴으로 느껴지던  어머니의 그 따스함을 잊을 수 없다.


어머니의 장례미사를 봉헌하기 직전,

나는 25년 냉담 시절에 종지부를 찍었다.


장례미사를 집전하여 주신 전민동 본당의 주임신부님이신

방경석 알로이시오 신부님께 고해성사를 청하며


주님께...


'죄 많은 저의 냉담을 용서하여 주시고,

불쌍히 여기시어 주님의 자녀로 다시 받아 주십사' 고

진심으로 기도드렸다.


전민동 성당에서 연미사를 봉헌하며 어머니를 배웅해 드리면서

그렇게 나의 새로운 신앙생활이 시작되었다.


주님의 품으로 다시 돌아 온 지금...

작은 것에도 진심으로 감사하고, 기뻐하며...


특히, 뒤늦게 다시금 주님 안에서 신앙생활을 할 수 있도록

곁에서 늘 세심히 살펴 주시는 형님, 형수님께 참으로 감사하는 마음이다.


"형님, 형수님....  사랑합니다...."


주님 말씀에 귀 기울이며,

주님의 가르침을 따라...


은총속에 생활할 수 있게 된 것에 진심으로 행복해하며 살아가고 있다.


나에게 있어서

전민동 성당은

모든 것이 주님의 은총이라 할 만큼...

기쁘고, 소중한 '만남' 의 선물이라는 생각이 든다.


20년 넘게 만나볼 수 없었던

그리운 대학때의 가톨릭 동아리친구들과 뜻깊은 재회의 '만남'을 가질 수 있었던 것 또한

주님께서 나에게 주신 선물일 것이다.

특히 대학에서 공학을 전공하고 새롭게 신학교에 진학해서 사제가 된 친구신부님을 포함해서

모두가 정겨운 친구들이다.


창세기 성서공부 소공동체...

신약성경 통독 소공동체의 형제, 자매님들에게서도

많은 신앙적인 도움과 배움을 받을 수 있음 또한 나에겐 커다란 은총의 선물이 되어 준다.


지난해 냉담을 풀고서 다시금 신앙생활을 시작하던 무렵,

전민동 성당의 보좌신부님이신 박종민 프란치스코 신부님께 다시 새롭게 교리를 교육 받고 싶은데

가능한 지에 대한 부탁 말씀에

흔쾌히 예비자 교리반에서 함께 할 수 있도록

배려하여 주신 마음에 

진심으로 감사하고 있다.

그때의 예비자 형제, 자매님과 같이 교리 교육을 받으면서

참으로 다시금 느끼고, 배우게 된것들이 많았다.


교리 교육 말미에 다녀왔던 '일일피정'은

 내 인생에서 잊을 수 없는 은총의 선물이다.


지금 와서 솔직히 고백하지만, 그때의 피정이

정말 부끄럽게도 내 신앙생활 전반에 걸쳐서 처음 참여했던 피정이었다.


이어서,

신약성경 통독반 신구들과 함께 다녀왔던 성지순례길은 커다란 은총과 함께

우리 신앙선조들의 깊은 신심과 굳건한 믿음에 대하여 배울 수 있는 소중한 시간들이었다.

역시 부끄럽게도 성지순례를 처음 다녀왔던 곳이 '천호성지'였다.


아마도 내 평생 잊을 수 없는 은총의 시간들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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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신앙적 어른이 되기 위하여...(견진성사를 준비하면서...)



이제 다가오는 11월 5일...


옝세를 받은지 35년 만에 드디어 신앙적 어른이 되기 위한

'견진성사' 를 앞두고 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신앙적 어린 아이가 아닌,

진정한 신앙적 어른이 되기 위한

새로운 '거룩한 만남' 을 준비하고 있다.


나의 ' 믿음 '...

나의 ' 사랑 ' 의 실천...


그리고,


주님의 부르심에 대하여

내 안의 저 깊은 곳으로부터

진정으로 우러나오는

' 응답 ' 을 찾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


주님의 참사랑을 가슴으로,

몸으로 실천하는

성숙한 그리스도인으로서

주님께서 주신 소명을 다하기 위하여

' 내 안의 성전 ' 을 거룩하게 정화하며...


주님 말씀의 진리와 가르침을 따르는 주님의 ' 종 ' 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끊임없는 ' 성찰의 여정 ' 을 이어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