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민족의 고유한 전통과 풍속 안에 들어온 종교적인 진리가 보편 신앙의 가치로 인정받지 못하던 시대, 사회적 제도의 모순과 인간적 내면의 갈등으로 힘든 시간을 겪어낸 이들이 있었다. <만남>은 그 시대를 각자의 자리에서 살아낸 이들의 고된 삶을 순교와 배교라는 이원적인 틀에 가두지 않는다. ‘유교와 가톨릭, 신과 인간, 인간과 인간의 만남이 있는 자리에 역사적 대의와 명분, 각기 다른 인간의 삶과 갈망이 있다. 그리고 또 무엇이 있을까?

<만남>에서는 18년이라는 유배기간 동안 한자(漢字)가 생긴 이래 가장 많은 저서를 남겼다는 정약용의 학문적인 열정과 삶의 의욕, 성직자 영입을 위한 정하상의 신앙적인 열성과 갈망을 각기 다른 차원의 자기 완성을 위한 인간의 소명으로 본다. 정하상이 흔들림 없는 당당한 믿음으로 걸었던 곧은 길, 깊은 학문적 식견을 통해 깨달은 진리를 국법 앞에서 외면하고 목숨을 건진 후 고뇌하며 걸었던 정약용의 굽은 길은 같은 곳을 향해 있다.

소설 <만남>에는 소박하고 가난한 이들이 유교적인 문화와 관습과 제도 아래 시대와 상황에 순응하며 살아야 했던 아픈 삶이 있다. 권진사댁 고운 자매들이 거지와 무당으로 살아야 했던 삶이 애처롭고 순간적인 탐욕으로 일그러진 노비의 삶이 비참하다. 유배지에서 정약용의 그늘진 삶과 시중을 들던 여인의 한결 같은 순종의 삶이 가련하고 둘 사이의 어린 딸 홍님의 삶이 애잔하다, 민족의 정서가 담겨있는 무속(巫俗)의 사설이 구슬프고 애환이 담긴 그들의 삶도 고달프다.

<만남>에는‘대가 집 종손 맏며느님으로서 다지고 다져진 품격을 가졌다는 저자의 담대하고 섬세한 손길이 있다. 그안에 역사적인 고중과 학술적인 지식, 신앙인의 영성으로 보는 신앙과 사상의 충돌이 있다. 그리고 나약한 인간의 본성 안에 숨겨진 모순과 흠마저 귀하게 품어주는 따뜻한 사랑이 있다. 진리 안에 사랑이.

 

순교자 성월에<만남>은 나에게 특별히 인간 정약용을 만날 수 있는 자리였다. 해박무변의 학식, 넓은 시야, 고급 학문의 명석한 이해, 그리고 새로운 문물의 수용, 합리적인 사고방식 등으로 너무나 솟아 있었다.’는 정약용. 그를 만나는 동안 왜 나는 줄곧 우징숑이란 인물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을까?‘ 우징숑은 중국의 법리학자였다. 그는 <동서의 피안>에서 동양과 서양의 종교를 비교 분석하고 종합하여 동서를 초월한 피안의 세계가 바로 그리스도교 신앙임을 제시했다. 우징숑은 동양의 3대 종교인 유. . 도교 안에서 자라고 수학했지만, 자신의 민족적인 전통과 문화적인 유산 일체를 고스란히 지닌 채 성교회에 들어와 가톨릭교회를 제집처럼 마음 편히 드나들었다한다. 중국에 들어온 성경과 교회의 많은 공문서를 자국어로 번역하고, ‘차를 마시는 자리에서 영혼에 대해 매우 속 깊은 이야기를 했다는 우징숑, 그는 서구 사회에 John Wu로 알려져 있다.

<만남><동서의 피안>을 다시 뒤적이다 하늘을 본다. 저녁노을에 잠긴 성당 종탑의 십자가에 눈길이 멎는다. 시대의 아픔을 안고 서로 다른 길을 걸은 이들이 하나 둘씩 모여든다. 정하상 바오로, 요한 정약용,... 그리고 우징숑, 어디에서 오는 아픔인지 마음 한 구석이 다시 뜨거워진다. 저물어 가는 석양이 내 마음을 담아 가는지 유난히 붉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