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는 나' 앞에서 있는 그대로 있을 수 있는 사람은 나 자신과 세상을 정직하게, 좀 더 사랑스러운 눈으로, 더 넓고, 덜 자기 중심적인 틀로 본다.

이 책을 읽으면서 바리사이들과 예수님의 차이에 대해 주목할 수 있었다.바꿔 말하면,예수님을 따르는 데 있어 장애가 되는 바리사이적인 요소들을 성찰해볼 수 있었다는 얘기다.

바리사이는 종교까지도 위장된 control 수단으로 사용하고 하느님마저도 자신의 착한 행실로 통제하려고 한다.그런데 예수님은 사람들의 인정에서 자유로우셨다.완벽함이 아니라 오히려 무질서와 불완전함에서 하느님을 발견하셨다.세속의 이분법과 분열이 그분 안에서 완전히 극복된다.한편 바리사이의 이분법적 사유는 이 세상 모든 불평과 폭력의 원천임을, 그들의 배타성과 공격성,난폭성에서 보게 된다.그들의 이원론에 찌든 머리로는 마음 속에 정해놓은 위치에서 후퇴하기가 너무 힘든 것이었기에 자꾸 따지고 정복하고 다스리려 할 뿐이니 어찌 사랑이 발디딜 틈이 생기겠느냐 말이다.그들에게 역설과 모순과 신비가 믿음의 본질이라는 진실은 아예 떠오르지도 않았을 것이다.그들은 아마 도덕적 완벽 추구로 그들이 구원받을 자격이 충분하다고 착각했는지도 모르겠다.하지만 예수님은 결코 "옳은 사람이 되어라.이것이 나의 계명이다."라고 말씀하시지 않았다.

바리사이는 일반 상식과 소위 합리적 판단에만 매어있는 사람이다.그래서 자꾸 예수님 꼬투리를 잡는다.판단하고 분석하고 통제하는 마음으로 어떻게 사랑할 수 있을까...자기 생각이 옳음을 주장하기 위해 하느님이신 분까지 죽여 버릴 뿐이다.다른 틀로 볼 줄 모르는,합리적이고 논리적인 그들에게는 인격이 아니라 관념이나 교리,신조만 중요했다.하지만 예수님은 합리적 이론으로 설득하거나 논쟁으로 이기려 하지 않으시고 하느님에게서 온 것이 아니면 사라질 것이라고 열어 두신다.자기 생각에 휘둘리지 않고 벌거벗은 지금을 사는 길을 몸소 보여 주신 것이다.

역설이 쉽게 용납되지 않는,은총이 결핍된 그들은 남을 심판하고 강요하면서 감정이입도 못하고 연민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 된다.그들은 모든 것이 바르고 마땅해야 하는 실력사회의 감옥에 갇혀 살 뿐이다.내가 자유로워지려면 벌거벗은 나의 모자람까지 있는그대로 보여드릴 수 있어야 되는데 그것은 그들에게 정신적 혁명이 일어나지 않는 한 불가능한 일이었다.그들은 역설과 신비에 눈 먼 자들이다.그들은 교리를 믿을 뿐이지 하느님과의 인격적 만남은 없었다.결점들까지 모두 포함한 있는 그대로의 벌거벗은 지금의 나인 것으로 하느님 앞에서 충분함을 체험하지 못했기 때문에 사랑할 줄 몰랐다.그래서 그저 완벽하기만을 자타에게 요구했고 도덕적 판단만 일삼았다.절대 행복할 수 없는 길이다.벌거벗은 지금 나의 모습 그대로 하느님께 열어놓고 받아들여지는 사랑의 체험으로 인간은 행복해지기 때문이다.하느님 앞에서 쓸 데 없는 무장 해제하고 그리스도의 마음을 입으라고 촉구하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