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세계에서 성덕의 소명에 관한 교황의 권고, 당신의 소박한 바람이라는 친근한 표현을 쓰셨다. 교회의 가장 아름다운 얼굴이라는 성덕, 신학적 견지로 본 성경의 인물이나 위대한 성인들의 성덕이 아니라 먼저 우리 옆집 이웃 안에서 발견되는 성덕을 말씀하신다. 성덕의 소명은 아브라함의 부르심을 시작으로 저마다 자기 길에서 하느님께서 각자에게 안배해주신 개인적 은사인 자신의 최고 정점을 발휘하는 일이다. 성화 활동은 삶이 어떤 사명을 지니고 있는 것이 아니라 삶이 바로 사명이므로 어느 누구도 자신의 사명인 성덕의 길에서 무관할 수 없음을 강조하신다.

성덕의 두 가지 교묘한 적에 대한 지적이 날카롭다. 주관적인 믿음을 전제로 한 현대의 영지주의와 겸손 없는 의지로 빠질 수 있는 펠라지우스주의다, 자기중심적이고 엘리트주의적인 자만이 가져올 수 있는 신 펠라지우스주의. 교회를 잠식해 들어가며 성덕의 길로 나아가지 못하게 막는 이러한 일탈은 개인의 성향과 성격에 따라 다양한 양상을 띠므로 자신의 삶에서 어떤 양상으로 드러나는지 하느님 앞에서 성찰하고 식별할 것을 권고하신다.

진리의 가르침인 예수님의 참 행복 선언은 그리스도인에게 신분증, 하느님의 정의와 자비에 대해 더 깊은 자각을 요구하는 새로운 표현이다. 그리스도인들에게 건전하고도 끊임없는 불편함을 수반하는 인식-인간의 존엄에 대한 생생한 인식 없이 과연 성덕을 이해할 수 있는지 반문하신다. 예수님의 단호한 요구를 열린 마음으로 깨닫고 받아들여 시대의 흐름에 거슬러 나아갈 수 있는 기준의 선택을 요청하신다. ‘자비는 복음의 뛰는 심장이라는 말씀이 복음을 기쁨으로 살아 내야 할 소명-하느님의 모상으로 창조된 인간의 완전성을 다시 일깨워준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끊임없는 영적 투쟁, 깨어있음, 식별, 그리스도인의 승리는 언제나 십자가다. 그 십자가상 그리스도의 얼굴을 응시해도 치유되고 변화 될 수 없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면 주님의 심장, 곧 그분의 상처 -하느님의 자비가 머물러 있는- 안으로 들어가라. 토마시 할리크의 <상처 입은 신앙>에서 상처 입은 자들의 문, 하느님과 '간극 없이' 만날 수 있는 관계, 변화된 상처와 마지막 행복선언과도 이어지는 말씀이다. 은총과 십자가의 논리, 참 행복의 역설을 믿고 받아들일때 우리는 함께 기뻐하고 즐거워할 수 있다.

'저마다 자기 길에서' 부르심을 받은 이들의 마음이 경건하게  채색되는 가을,  인생에서 삶과 예술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단 하나의 색은 바로 사랑이라 한다. '성덕은 다름 아닌 충만하게 실천된 사랑',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말씀을 매일 전송해주는 벗이 있다. 마무리에 덧붙이라는 듯 오늘 아침 보내준 메시지- "예수님은 우리에게 거룩함에 이른 여정에 필요한 단순 명료한 프로그램을 주셨습니다. 그것은 하느님과 이웃을 사랑하라는 계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