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표지의 그림을 보고 있노라니

무화과 나무 아래 있는 나타나엘이 된 느낌이다.

나무 아래에서 서로의 '만남'을 예수님도 나타나엘도 기억하고 있다.

하느님과 숨바꼭질을 하던 술래인 나타나엘에게 예수님이 '나 여기 있다'라시며  당신이 몸소 술래가 되신다.


나도 열심히 고단수 하느님과 숨바꼭질 중이다.

신비이신 하느님을 빙산의 일각이지만 조금씩 알아가는 친교의 여정이 여간 다이나믹한 게 아니다.

그야말로 역동적이다. 생각지도 못한 일들을 겪을 때마다 정신이 번쩍 든다.

이 관계성 안에서 하느님의 이미지와 그분 앞에서 나의 현주소가  동시에 업데이트되고 있다.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 되고자 하는 갈망은 크나 동시에 사랑 불능인 나의 모습을 발견할 때마다 비참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매일 '미사'를 통해 새로 시작할 수 있는 '사랑의 샘'이 되어 주셔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그토록 쉽게 달라붙는 죄 때문에 내 마음에 갈등이 일 때마다 주님께서 몸소 함께 싸워 주시는 이유는

나에게 '자유'를 선물로 주시기 위함이라 느끼고 있다.

그분과의 생생한 관계 안에서 나의 자유 의지를 그분의 주도권에 내어 맡기는 만큼 자유로워짐을 체험했으면서도 

인간적인 노력이라는 이름으로 안간힘을 쓰면서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을 오히려 방해하고 있구나 싶을 때가  있다.

은총의 무상성에 눈 뜨기 위해 가난해지고, 자유롭기 위해 ego에 얽매임으로부터 벗어나게 해주십사 수시로  기도드리며 그분과 함께 가는 여정이다.


하느님과 숨바꼭질하면서 '못찾겠다 꾀꼬리~'하고 나자빠질 때, 생각지도 않은 방식으로 당신을 보여주신다.

하느님 자비와 사랑을 의심하면서 칠흑같은 어둠 속에서 영적으로 시들어가는 나의 생명에 당신 사랑의 숨결을 불어 넣어 파스카로 이끄신다.

나를 금쪽같이 아끼시는 분께서 나 죽는 꼴을 절대 허락하시지 않으신다.

당신의 목숨을 담보하시면서까지 나를 기어코 살리신다.

부족한 나를 위해 매일 당신을 전부 내어주시고, 소중한 나를 위해서라면 도무지  아까운 게 없는 분이시다.  

시작이요 마침이신 그분께서 항상 나와 함께 계심이 참 다행이고 든든하다.

사랑이신 그분께서 당신 안에 머무르라고 수시로 나를 부르신다.

하느님을 늘 찾고 만나고 싶어 하면서 하느님을 목빠지게 기다리게 하는 술래는 아닌지 돌아보게 하고,

하느님과 숱한 숨바꼭질 끝에 하느님과 내가 서로를 온전히 되찾은 기쁨에 얼싸안고

마침내 그분과 하나되는 나의 종말을 동시에 생각하게 하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