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이 궁금하다

 

 

  1.

  천주교의 환란을 예감한 다산은 관직을 사퇴하고 정조에게 자명소(自明疏)를 올린다

  “마음속으로 기뻐하고 사모했으며 그 내용을 가지고 다른 사람에게 자랑한 적이 있었습니다. 본원의 마른자리에    기름이 스며들고 물이 젖어들어 뿌리가 튼튼하게 박히고 가지가 얼기설기 뻗어나가 스스로 깨닫지 못했습니다.”

   18C 조선의 유학자가 초세기 이스라엘의 신을 만났다. 천주교, 새로운 영혼에 관한 책들이 물처럼 기름처럼 마음에 스며들었지만 임금의 지상과 천주의 하늘이 양립할 수 없음을 깨닫고. 왕에게 지식인의 고뇌를 토로한다.

 

  우연히 자명소(自明疏)의 한 구절을 접하고, 다산이 궁금해졌다. 다산의 갈등을 자세히 들여다보고 싶었다.

  지난달에 돌베개에서 나온다산의 풍경이란 책을 샀다. 막상 들춰보니 시집이었다. 원하던 책은 아니었다.

  주일 저녁 성당을 들어서는데, ‘한무숙씨의 책이라 적힌 게 눈에 띄었다. 오래 전에 어디선가 소개되었던 책이다. 읽으려고 검색했던 기억이 났다. 그때 상 하 두 권이었는데. 그럼 이 책이 그 책일까. 개정판일까.

 

   미사 전, 펼쳐봤다. 궁금해 하면 어떻게든 답을 주신다. 다산 정약용에 관한 책이었다.



  2.

  다산의 가계도는 한국 천주교회사다7 대 옥당 가문이 드디어 기지개를 켰다. 가문을 일으킬 절호의 기회였다. 그런데 풍지박산이 났다. 모든 것이 서학, 천주학 때문이었다. 강진으로 유배 간 다산이 절대 만나고 싶지 않은 게 천주학쟁이였다. 그는 취조와 심문, 배교의 순간을 기억에서 지우고 싶었다. 형 정약종과 조카사위 황사영이 원망스러웠다. ‘형은 어쩌려고 죽음의 길을 택했을까?’ 그는 형과 생각이 달랐다. 다산은 서학을 읽었을 뿐 믿은 게 아니었다. 그러기에 임금에게 자명소를 올리기까지 했다. 당대의 석학이었던 다산의 태도는 많은 사람을 실망시켰다. 그들에게 다산은 배교자였다. 조카 하상이 찾아왔을 때 다산은 애써 배척한다. 하지만 조카에게서 형 약종의 모습을 떠올린다.  


   전의 가톨릭대학교를 가면 정하상 교육회관이 있다. 이 사람은 어떤 사람이길래, 신학교 옆에 자기 이름의 건물이 있을까? ‘정하상이라는 이름을 처음 들었을 때 가졌던 의문이었다. 차츰 조선 최고의 평신도 신학자로 이 땅에 천주교를 뿌리 내리게 한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는 아버지를 일찍 잃은 척박한 환경에서 가난과 멸시를 딛고 일어나 후일 조선교회가 조선대목구로 승인받기까지 수없는  고난의 여정을 보낸 순교자다.

 

   장작의 불이 다 타서 재가 되어도 막대로 두드리면 꺼져가던 불씨가 다시 살아난다. 불씨가 사방으로 튄다. 아이러니하게도 박해가 신앙을 번지게 했다. 학자들에게서 시작된 신앙이 박해를 피해 숨어 들어간 산으로, 섬으로, 귀양 간 유배지로 번져갔다. 양반에게서 상민에게로 한번 스며든 신앙은 물처럼 기름처럼 사방으로 번져갔다.

하느님은 계속 문 밖에서 문을 두드리신다. 하지만 그분은 결코 문을 부수고 들어오시지 않는다. 우리는 원한다면 하느님이 존재하신다는 것을 부정할 수는 있다. 하지만 그 어떤 부정도 하느님이 존재하신다는 것을 변화시키지는 못한다.

 

   파리 외방전교회 달레 신부의 한국 천주교회사에는 요한 정약용이 썼다는 조선복음전래사가 자주 인용된다. 이승훈의 호를 따서 지은 만천유고는 이익의 천주실의발정약전의 십계명가이벽의 천주공경가이가환의 경세가이벽의 성교요지를 모아놓은 56112면의 책이다. 이 친서교적인 문집에 무극 관인이라는 필명을 쓴 편집자의 발문이 실려 있다.

 

    “평생 옥사로 인한 죄인으로 지내다가 겨우 죽음을 면하고 30년 만에 세상에 나오니..... 동풍이 불면 얼음이 녹고 새로운 잎이 싹트고 봄이 오면 만물이 소생함이 상주의 광대무변한 섭리로다. 모든 우주 진리가 이와 같으니 태극(주자학에서 말하는 최고 존재)과 무극(무한한 존재)의 차이를 크게 깨닫는 자는 상주의 뜻에 접함과 같음이니라.”

    

  만남의 저자는 무극관인’을 다산 정약용으로 짐작한다. '무극관인'은 기독 신앙을 가진 사람으로 무한한 존재를 감지하여 볼 수 있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