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들었던 여름이 폭염 경보로 이어진 더위 때문만은 아니었다. 예년과 다른 신체 조건으로 힘든 봄을 이겨냈기에 여름은 잘 지낼 수 있으리라 여겼는데... ‘땀이 비 오듯이라는 말의 의미를 체득하게 된 여름, 허약함을 내색하지 않으려는 의지와 무관하게 급격히 떨어진 저혈당의 위험한 전초 증상이었음을 늦게야 알았다. 응급적인 조치로 도움을 주고 소리 없이 배려하는 이들의 손길은 건강한 여름을 나게 한 커다란 선물이 되었다. 

또 하나의 여름  선물, <벌거벗은 지금>이미 받은 선물을 다시 알아차리도록 도와주는 동반자였다. '심연'이라는 영혼의 밑바닥에서 나의 본질을 보는 순간 기꺼이 하느님께 굴복했던 시간과 그 이후 분명한 믿음 안에서 누렸던 충만한 기쁨이 은총이었음을  다시 깨닫게 했다. 벌거벗은 지금'은 성경의 지식이나 교리를 통해 개념화하고 객관화시킨 하느님, 이원적 사고의 틀로는 볼 수 없는 궁극의 실재를 바로 보기 위해  더 잘 알아야 할 것들을 보여준다. ‘깊은 영적 차원의 변화를 경험하지 않은 이들이 교회의 일꾼이 될 때, 그들의 일은 화려한 경력이 되고 교회는 사람들이 출석하는단체가 된다.’고 지적한다. 가톨릭의 오랜 전통인 관상’, ‘비이원적 사유를 새롭게 발견하기 위해 새 안경을 쓰고 그 렌즈를 항상 깨끗이 닦아 보라고 권한다.  <벌거벗은 지금>은'새로운 앎'에 다시 도전할 수 있는, ‘벌거벗은 지금을 살아낼 수 있는 용기를 준다.

신앙여정 프로그램에서 주어진 여름방학 과제는 내 자신과 하느님과 함께...’였다. 그 안에는 내 인격적인 정체성과 신앙의 인격화를 이루는 과정, 내 신앙의 역사를 되돌아보기가 있었다. <벌거벗은 지금>은 하느님을 내 생명의 기초로 삼는 것이, 내 생활의 기초가 되는 신앙 체험이 무엇인지 다시 한 번 돌아보게 했다. 인생의 광야에서 만난 하느님은 내 실존의 근거를 예수님 안에서 찾게 했고, 나의 정체성을 당신의 부르심 안에서 찾게 했다. 그 안에는 그분과 함께 겪어낸 사랑의 기쁨과 아픔, 고통의 상처도 있다. 크고 작은 사건 안에서 그분의 섭리를 몸으로 체득했음에도 예수안의 역설을 주저함 없이 받아드리기는 여전히 쉽지 않다. 결국 그 파스카 신비가 매 순간 내 '삶의 중심원리로 자리 잡지 못하고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교회에는 믿음의 본질을 알게 하는 프로그램이 많다. 그러나 어떤 탁월한 프로그램도 하느님을 만나게 해줄 수 는 없다.'  내가 하느님의 삶 자체에 기꺼이 참여하는 순간, '벌거벗은 지금'나인 나로 살아내는 순간, ’현재 순간의 성사안에서 신앙의 인격화는 이루어진다, ’인간의 지각을 뛰어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체험 하면서...

누구를 본받아 살기를 피하는 묘한 방법들 가운데 하나가 그를 높은 보좌에 모셔두고 그에게서 멀리 떨어지는 것이다. 예수가 신성을 지녔을 뿐만 아니라 우리와 똑같은 인성을 지닌 구체적 인간임을 받아들일 때, 비로소 당신은 그분과 분리되지 않은 당신을 보게 된다. 마음을 열고 예수 안에 있는 위대한 역설들을 받아들여라. 그때 당신은, 당신한테도 똑같이 있는, 서로 반대되는 것을 함께 껴안을 수 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