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부들과 함께 하는 사색을 읽고

 

 

윤선경 수산나

 

 

몇 년 전 피정을 갔을 때, 눈을 가리고 걷는 시간이 있었다. 시각 장애인들을 이해하기 위한 간접 체험이었다. 수건을 풀고 보니 분명히 앞으로 간다고 걸었는데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걷고 있었다. 우리의 감각이란 게 부정확하고 보잘 것 없다는 걸 깨달았다. 책의 첫 장 '교부들의 지혜'를 읽으며 손을 허우적거리며 걷던 그날이 갑자기 떠올랐다. 나는 지금도 '링반데룽', 환상방향으로 쳇바퀴 돌고 있으면서, 앞으로 잘 걸어가고 있다고 착각하며 살고 있는 건 아닐까.

 

 

오늘은 성령강림 대축일이었다. 정성스럽게 만들어진 비둘기가 '의견과 평화'를 내게 물어다 주었다. ‘의견은 하느님이 당신의 영을 통해 우리의 마음을 비추어 복음에 맞는 선택을 할 수 있게 하는 은사다. 해마다 그때의 상황에 맞추어 주어지는 성령의 은사는 그 자체가 신비이다. 미사를 마치고 나오는 길에 이 책을 샀다.

 

 

교리신학원에서 이상규 신부님의 교부학을 들었다. 신부님은 수업 들어오실 때마다 교부들의 책을 양팔에 한가득 들고 비틀거리며 들어오셨다. 지금 생각하니 그 많은 책들이 수업에 딱히 필요한 건 아니었다. 지금에서야 왜 신부님이 그렇게 많은 책을 들고 들어오셨을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아마 일주일에 두 번, 세 시간의 수업만으로 교부들의 생애와 말씀을 전하기에는 역부족이니, 가능하면 그 책들을 우리가 읽기를 원해서였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교실에 들고 오신 교부들의 책 한 권에서 발췌된 문장으로 늘 수업이 시작되었다. 생전 들어보지 못했던 이상하고 긴 이름의 교부들이 신부님의 음성을 통해 세월을 넘어 우리에게 왔다. 교부들은 신앙과 삶이 모두 절절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하느님을 예수님을 신앙과 올바른 삶을 우리에게 이야기했다.

 

 

교부들과 함께 하는 사색은 제목처럼 이천 년 전 교부들을 오늘 이 곳, 우리의 고민 묵상 자리에 불러냈다. 사랑 겸손 노동 침묵 평화 기도 십자가와 같은 주제로. 아우구스티누스 테르툴리아누스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 대 바실리우스 암브로시우스 치프리아누스 같은 교부들이 등장한다.디오그네투스에게 보낸 편지』 『헤르마스의 목자같은 초세기 교회의 문헌도 잠시 등장한다.

 

 

많은 말 속에서 즐거움을 찾는 사람은 비록 훌륭한 것을 말한다 할지라도 공허한 사람이다. 침묵은 그대를 하느님 안에서 지혜롭게 하며 무지의 환상으로부터 구해준다. 침묵은 그대를 하느님과 결합시켜준다.”(니네베의 교부 이사악)

 

우리가 홀로 있다는 것은 자신을 온전히 하느님께 봉헌하는 순간에 있음이요, 영혼을 그분께 열어젖히는 순간이며.”(암브로시우스)

 

교육이란 지식을 가지지 못한 영혼에 지식을 집어넣어주는 것이 아니다. 이는 마치 소경의 눈에 시력을 넣어줄 수 있다는 말과 같이 당치 않는 말이다. 눈이 어둠을 벗어나 빛을 보려면 온몸의 방향을 눈과 함께 돌리듯 영혼의 방향을 이 변화의 세계로 돌려 이끌어주는 것이 교육이다.”(플라톤의 국가론에서 교육의 본질)

 

 

이 책은 저자가 서두에서 말했듯이 플로리레지아꽃다발이다. 여러 교부의 많은 책에서 주제에 맞는 글을 찾아 엮은 사색 다발이다. 한꺼번에 읽는 것도 좋고, 고민하고 묵상하는 주제들을 교부들은 어떻게 이야기 하고 있는지 천천히 주제별로 다시 읽어봐도 좋을 것 같다. 과해서 부담스럽지 않을 정도로 깊고 넓게 교부들의 말씀과 연결되어 있다. 책 사이의 사진이 시원하다. 읽다가 눈도 식히고 마음도 식힌다. 급하게 읽지 말라고 저자가 말하는 듯하다.

 

 

그리스도인은 시간을 걸으면서 영원을 찾아가는 순례자라 한다.지상의 연이 우리를 하나 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도착할 곳이 하나이기에 우리는 하나가 된다. (85) ‘체념(諦念)’이라는 말에는 희망을 버리고 아주 단념함이란 뜻도 있지만 도리를 깨닫는 마음이란 뜻도 있다. 저자는 체념을 시시하고 허망한 것에 달라붙어 지지고 볶는 것을 그만두는 의연한 자세라 한다. 히포의 성인은 무릇 진리의 모상에 자기를 맞추지 않은 자는 결국 허망함의 모상에 머물게 된다.”고 했다. 체념은 세상의 가치를 하대 하자는 게 아니라 집착에서 벗어나 보자는 이야기다.

 

 

지금도 나는 '링반데룽'하며 걸어가고 있는지 모른다. 하지만 우리가 한번 더 인생의 철이 든다면, 인생의 깊은 의미를 침묵 속에서 바라볼 수 있다면, 사물과 우리의 삶을 전체적으로 보는 식별력으로 우리의 실재를 깨닫는다면, 지금 나의 문제는 실상 보잘것없는 티끌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게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