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낮은 곳에 계시는 주님> - 양승국 신부님

  

5월 20일 주님 승천 대축일-루카 24장 46-53절

“이렇게 강복하시며 그들을 떠나 하늘로 올라가셨다.”  


  

<가장 낮은 곳에 계시는 주님>


오늘 주님 승천 대축일에 제자들은 주님과 또 한 번의 이별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번 이별은 지난번 이별(예수님의 수난과 죽음)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의 이별입니다.

지난 번 헤어짐이 고통과 슬픔의 이별, 엄청난 상처와 충격,
큰 두려움을 가져다준 이별인데 비해
이번 이별은 축제의 분위기가 느껴집니다.

마치 부모님들 동남아 효도 관광 여행 떠나는 분위기입니다.
영영 이별, 이제 떠나가면 다시 못 뵐 마지막 작별이 아니라
또 다른 만남을 전제로 한 잠깐의 이별입니다.

예수님과의 첫 번째 이별 때의 분위기가 기억납니다.
떠나가시는 예수님께 대한 예의도 전혀 갖추지 못했습니다.
작별인사도 제대로 하지 못했습니다.

목숨이 두려웠던 제자들은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후환이 두려워 멀리 멀리 도망치기도 했습니다.
비겁하게 골방에 숨어서 전해오는 소식을 듣곤 했습니다.
제자로서의 도리를 전혀 갖추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이번 이별은 철저하게도 다른 분위기입니다.
예수님 부활 체험이후 그제야 눈이 밝아진 제자들,
늦게나마 귀가 뚫린 제자들은 비로소 예수님의 실체를
파악하게 됩니다. 이제야 드디어 그분께서 만물의 창조주이자
생명의 주관자이심을 알게 되었습니다.
드디어 제대로 된 신앙고백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제 모든 것이 명명백백해졌습니다.
제자들은 두려움을 떨치고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더 이상 그들을 가로막는 장애물은 없었습니다.
남은 것은 오직 하나, 죽기 살기로
예수님을 전하는 일뿐이었습니다.

이러한 제자들이었기에 승천하시는 예수님을
기쁜 얼굴로 보내드릴 수 있었습니다.

비록 스승께서 자신들을 떠나가지만,
제자들은 한 가지 진리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제 더 이상 그 무엇도 스승과 제자 사이를
갈라놓을 수 없다는 진리 말입니다. 그 어떤 권력자도,
그 어떤 두려움도, 죽음조차도 스승과 제자 사이를
떨어트려놓을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게 되었습니다.

비로소 제자들은 언제 어디서나, 그 어떤 상황에서나
스승께서는 자신들과 함께 하시리라는 사실을
완전히 파악하게 되었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역시 더 이상 혼자가 아닙니다.
더 이상 외로워할 필요도 없습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나를 소외시킨다할지라도
그분께서 나와 함께 계시니 크게 신경 쓸 것도 없습니다.
그저 그분께서 내 일생 전체에 걸쳐 함께 해주실 것이니
감사하고 기뻐하며 찬양 드리는 일, 그것만이 우리가 할 일입니다.

제1독서(사도행전) 말미에 기록된 두 천사의 질문이
계속 제 머릿속에 남아있습니다.

“갈릴래아 사람들아, 왜 하늘을 쳐다보며 서 있느냐?”

이 말이 제겐 이렇게 들리더군요.

“왜 뜬구름 위에서 살고 있느냐? 왜 움직이지는 않고
그럴듯한 미사여구만 늘어놓느냐?
왜 ‘때깔 나는’ 것만 찾고 있느냐?
속은 텅 비어있으면서 왜 ‘있어 보이는’ 척 하느냐?”

어쩔 수 없는 교회의 본래 모습은 하늘만 쳐다보는 모습이 아니라
인간 세상 한 복판으로 내려가는 모습입니다.

죄와 타락과 고통이 뒤엉킨, 그래서 짜증나고 힘겨운
인간 세상 한 가운데로 내려가는 것이 교회의 사명입니다.

과거 교회는 보통 도시의 한 가운데, 가장 높은 언덕 위에
위풍당당하게 자리 잡곤 했습니다. 세상과는 어느 정도 거리를 둔
높은 곳에 고색창연하게 서있었습니다.

그러나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영성에 따르면 교회는
세상 가장 낮은 곳에, 인간 세상 가장 한 복판에 자리 잡아야 합니다.
교회는 죄인들을 까마득한 교회의 첨탑 위로 끌어올리기보다
죄인들이 득실대는 삶의 현장 한 가운데로 스며들어야 합니다.

주님께서 사라진 까마득히 높은 하늘로 향했던 우리들의 시선을
이제 이 세상에서 가장 낮은 곳으로 돌릴 때입니다.
왜냐하면 바로 그곳에 승천하신 주님께서
우리를 기다리고 계시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