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2.10.토요일 저녁 미사 후 세바특(세상을 바꾸는 특별한 강의)2탄이 있었다.김혜윤 베아트릭스 수녀님의 유명도는 과연 이유가 있다.일단 많은 교우들이 함께 하셨고 이구동성으로 모두 강의 끝내줬다고 입을 모으신다.성서 주간 행사 때 강의가 너무 좋아서 본당 신자들도 이런 귀한 강의를 들으면 좋겠다 싶어 추천했는데 신부님께서 허락해 주셔서 성사되었다.감사드릴 뿐이다.
수녀님께서 세상을 바꾸는 특강(세바특)이라는 말을 듣고 '세상을 어떻게 바꾸지?하느님만 하실 수 있는데...' 하지만 우리가 조금씩 자신을 바꾸려는 노력을 할 때 전권을 가지신 분께서 세상을 바꾸신다고 하시며 강의를 하시기 전에 먼저 본당의 느낌을 말씀해 주셨다.미사만 드리고 신자들이 가버려서 보통은 썰렁한데, 전민동 본당 로비에 계신 신자들의 모습을 보니 활발하고 생동감 있어 '역동적으로 살아있는 교회'라는 느낌이 드신다며 아마도 외형만이 아니라 벅찬 감동 때문에 신부님과 신자들이 서로 시너지를 교류하는 행복한 공동체로 느껴지신다고 인사를 건네신다.

이제부터는 본격적인 강의 내용이다.
흔히 신앙을 이해하는 관점이 사변적,관념적,윤리적,교조적이기 쉬운데 신앙은 구체적이고 개별적이고 실질적이고 밀접하고 인격적인 살아있는 만남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강조하신다.신앙은 교리나 난해한 신학이 아니고 삶의 현장이라는 것이다.우리들과 인격적인 communication (소통)을 위해서 하느님께서 사람이 되어 우리에게 오신 것이란 말이다.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현장 위주의 활동을 왕성하게 하고 계신데 그런 외적인 행동을 가능하게 한 기초는 베네딕토 16세 교황님께서 놓으셨다.바로 이분이 '신앙의 근간은 하느님과의 만남'임을 분명히 하신 현존하시는 20 c 신학계의 거장(칼 라너,한스 우르 폰 발타사르는 돌아가셔서)이며 대학자이신 요셉 라찡거라고 불리던 교황님이시다.이런 대 신학자께서 회칙을 내셨는데 의외로 사목적이고 대중적인 <하느님은 사랑이시다>를 내셔서 전세계 신자들에게 푸근한 이미지를 전하셨다.하느님께서는 이렇게 치밀한 계획에 따라 교황님들도 섭리하신다고 하면서 하느님이 누구이신지 만나서 알면 다른 모든 게 해결된다고 하셨다. 예를 들어,만남의 구체적인 신앙으로 경쟁,질투,시기 같은 세속성에서 오는 불편함에서 벗어나 존엄하게 살 수 있다.하느님을 만나야 구체적인 신앙이 싹트는데 우리는 미사 때 말씀의 전례와 성찬의 전례 중에 보편 교회가 믿는 하느님을 공식적으로 합법적으로 만날 수 있다.미사 중에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계시며 인격적으로 끊임없이 교류하시는 하느님을 모시고 말씀을 들음으로,영성체로 만나는 것이다.어느 정도 깨끗해야 성체를 모실 수 있을까 싶지만 오히려 혼란스럽고 상처입고 죄 중임에도 내 안에 오셔서 나의 부족함을 당신의 빛으로 정화시켜 주시고 치유해 주신다.
베네딕토 16세 교황님은 2005년,2008년,2013년 세 차례 시노드를 여시고 각각 후속 문헌으로 <사랑의 성사><주님의 말씀>을 내시고 2010년부터 2013년까지 신앙의 해를 선포하셨다.이 때 교황님은 잘 나가고 있어보이는 귀족화되고 있는 가톨릭이 종교 안에서의 명품처럼 신자들이 분위기만 좋아하는 건 아닌지 진짜 신앙인으로 살고 있는 건지 본질적이고 도발적으로 물으시며 그냥 신앙인이 아니라 진짜 신앙인의 때가 왔다고 '신앙의 해'를 선포하신 것이다.실제로 1950년
전쟁이 끝나고 1980년대까지는 안전하게 살고 복을 받기 위한 기복신앙의 경향이 강했고,1990년부터 2010년까지는 물질적으로 살 만한 여유는 생겼지만 여전히 공허하고 남아있는 상처와 피해 의식을 치유받기 원했기 때문에- 이왕이면 가장 안전하고 도덕적인 성당에서- 마음의 평화가 신앙의 이유였다.하지만 기복이 성취되면 또 다른 기복에 대한 욕구에 본능적으로 끌리므로 늘 불안할 수밖에 없는데 이것이 지금 여기에서 존엄을 살게 하지 못하는 '악'으로 작용한다.나병 환자 10명 중에 한 명만 돌아온 복음에서 알 수 있듯이 치유와 해방이 목적이 아니라 진정한 치유와 해방은 하느님을 만나는 것이다.그 만남으로 영적인 변화와 내면적 성숙이라는 변모가 이루어져 상처를 두려워하지 않게 되고 고통의 상황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내 모습을 살아가는 저력을 갖게 된다.
신앙의 해 시노드 주제가 <그리스도교 신앙 전수를 위한 새복음화>였다.사람을 물질로 치환시켜 보는 세속화,경쟁 사회의 흐름 속에 휘말리지 말고 영적인 것을 갈구하며 비인간화를 막는 것이 교회의 사명이다.
그분의 영을 받는 것이 영성(Spirituality)이다.수도자가 된다는 것은 기도빨,영빨 쪽 DNA가 많아 숙명에 처한 게 아니라 아주 분명하고 구체적이 파트너가 있는 것이다.말씀이 사람이 되어 우리 안에 존재하시는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면 안 되는,그분 때문에 불편한 삶을 기쁘게 사는 것이다.따라서 '인격적,개별적 만남'없이는 신앙이라고 할 수 없다.흔히 문화 생활을 영화나 뮤지컬 보는 것쯤으로 생각하는데 내가 생각하고 주장하는 바를 글로 쓸 줄 알게 되는 文化 되는 것이다.복음화도 마찬가지,성경을 읽음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내가 복음이 되는 것이다.그분을 믿고 존경하고 사랑하면 그분의 말씀이 이식되어 그분을 닮아간다.인격적 관계 안에서 말씀이 들어가서(information) 내가 포멧되어 변화(transformation) 된다.제2차 바티칸 공의회 때 생긴 복음화란 말이 처음에는 교회의 덩어리가 커지는 선교의 개념이었는데,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은 시대의 흐름에 따라가지 않고 정체성을 유지하는 것을 '새복음화'라고 하셨다.이어 베네딕토 16세 교황님은 세속주의,개인주의에 맞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강조하신 것을 내 안에서 실천하고 그분을 믿고 따르기 때문에 그분 말씀이 내 안에 구현되는 것으로 그리스도를 만나는 기쁨과 새로운 열정이 우리가 신앙 생활을 역동적으로 할 수 있는 동인임을 분명히 하셨다.(신명34,10)의 말씀처럼 신앙의 핵심은 '하느님과의 사귐'에 있다.구약의 4대 인물(모세,다윗,야곱,에즈라) 중 모세가 단연 으뜸인 이유는 얼굴을 마주보고 끊임없이 사귄 분이라서 그렇다.이스라엘 민족 공동체가 노예상태에서 자유로 이끌어 내신 하느님을 만난 원체험은 고엘로서 지켜주시고 보호해 주시고 막아 주고 만나,메추라기,물 등을 제공해주시는 주님(주인님)이시다.하느님의 아름다움을 체험하고 발견하고 경탄하면서 제작된 것이 바로 성경이다.발타사르 신학자는 진선미의 방법론을 뒤집어서 교조적,교리적 접근을 피하고 아름다움을 먼저 발견하면 자발적으로 신학을 하고 싶어진다고 미선진의 방법을 제시한다.
성경을 하느님과의 관계를 드러내는 드라마로 보자.우리에 대한 사랑 때문에 모든 것을 감수하시는 하느님,끊임없이 용서하시고 사랑하시고 우리의 죄값을 치르면서까지 우리를 살려내시는,부활과 함께 새로운 생명을 찾게 하는 모든 것을 감내하시는 하느님의 아름다움을 발견할 때 발출하게 되는 믿음이고 그분께 충성하지 않을 수 없다.하느님은 우리에게 직접 당신 자신을 기꺼이 알려 주시고 친구를 대하듯 말씀하시고 친구처럼 만나주신다.아무도 나를 도와주지 못할 때,광야에서 진짜 나를 도와주시는 분이 보인다.칼 라너의 초월론적 신학에서 말하듯이 존재가 무너져야 존재의 지평과 뿌리가 보인다.고난의 조건,고통의 상황 중에 무지 가난한데 무지 풍요로워지는 중요한 초대의 순간임을 느낀다.
성경을 집중해서 계속 10번이라도 보고 하느님 말씀이 들릴 때까지 성경 본문의 '타자성'을 견디어 내자.믿음이 깊을수록 하느님께서 비밀을 알려 주신다.또한 생활이 바를 때 믿음도 커진다.믿어서 기도한다기보다 기도해야 믿을 수 있다.베네딕토 16세 교황님의 <주님의 말씀>이란 후속 권고 책에 말씀을 실천하려고 노력할 때 이해가 더 잘 된다고 적혀 있다고 하시며 시간상 아쉬운 마무리를 하셨다.세바특 2탄도 대박 특강이었다.